코숨은 코 질환에 한약을 처방하지 않습니다.
비강 사혈법의 진화 / 이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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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강 사혈법의 진화


처음 코 안을 침으로 찔렀을 때가 생각이 난다.
​첫 치료 때는 하비갑개의 부어 있는 부분이 겉에서도 보일정도로 코가 꽉 막혀 있는 생후 백일 된 아기 환자였기 때문에 막혀 있는 코 안의 부어 있는 부분을 살짝
찔러서 코피를 낸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린 환자의 오랜 코 막힘이 단번에 해결되었다. 그 후로 감기로 약을 쓰고자 하는 환자들이 왔을 때,
코 안에 침을 맞아보지 않겠냐고 하며, 치료를 종용하곤 했었다. 
침으로 비강을 사혈하게 되면 코막힘이 잘 해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코감기를 침으로 고치는 즐거움이 생긴 것이다.


코 안에 부어 있는 점막은 하비갑개인데, 코가 꽉 막혀 있는 경우 보통 대부분 하비갑개만 보인다.
​푹신하고 말랑말랑한 부분만 찔러서 피를 내게 되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부어 있던 비갑개의 부피가 줄면서 콧구멍이 뚫리게 된다. 더 자세히 ​코 안을 들여다보면
중비갑개가 조금 보이고, 상비갑개까지는 관찰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비갑개는 코 안의 칸막이 중에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코골이 마찰음이 가장 많이 생기는 부분도 하비갑개이다. 일단 하비갑개의 부피를 앞부분부터 뒷부분까지 잘 줄이게 되면 코막힘이 치료되는 것이다.
치료 시 하비갑개만 잘 찔러주어도 코로 숨을 쉬는 데는 지장이 없게 된다. 그래서 수술을 하는 경우 대부분 하비갑개 절제술을 하게 된다.
하비갑개의 부피만 줄여줘도 대단한 치료가 되는 것이다.

 
나도 처음 비강사혈을 시작했을 때는 하비갑개만 사혈을 했었다. ​
사실 하비갑개 사혈만으로는 비염을 고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비강 석션법을 배우게 되었다. 비강내의 콧물뿐 아니라 부비동안의 농을 효과적으로 빼낼 수 있게 되면서 부비동염을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비동안의 농을 제거할 수 있게 되면서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임상적인 반응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석션법이 서투를 때에는 상악동의 농만을 제거할 수 있었다. 접형동의 농을 제거하기까지 시간이 많아 걸렸었고, 의도한 바대로 사골동의 농을 빼낼 수 있게
될 수 있게 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지만, 부비동의 기능이 되살아나는 즉각적인 반응들을 접하면서 비강과 부비동의 기능이 머리의 과열방지장치,
뇌의 과열방지장치라는 이론을 정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하비갑개부위만 사혈을 해주어도 코구멍이 뻥 뚫리면서 비염이 완치되는 환자를 치료했다. 그러나 하비갑개 사혈을 하면서 부비동안의 농을 제거할 수
있게 되면서 축농증이 다 치료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치료효과가 좋았지만, 석션법이 아니면 부비동안의 농을 제거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축농증
치료하는데에 석션법을 의존했었다. 그래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왜 이렇게 축농증이 잘 생길 수 있게 코가 만들어진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석션을 할 수 없으면 축농증을 고칠 수 없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비강과 부비동의 구불구불한 구조에 대한 이해를 하지만 부비동염이 잘 생기게 만들어진
코의 구조에 대해서는 조물주님의 실수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리고 전기 시설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석션기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구였기 때문에 석션기가 없었던 시절에 축농증 치료는 정말 불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치료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하비갑개 부분을 찌른다. 비갑개 사혈 후 석션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대부분 코로 숨을 잘 쉴 수 있게 된다.


​치료를 하다 보면 석션으로 끊임없이 누런 농이 나오는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누런 농이 어디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석션기를 사용해서 빼도빼도 끝이 없이 누런 농이 나오는 것을 보면 코의 분비기능의 끝이 어디일지 감탄할 정도이다.
석션으로 야물딱지게 코 안의 농을 빼내주게 되면, 일단 내 코가 시원해지면서 환자도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리 농을 잘 빼내주었다고 하더라도 돌아서면 다시 꽉 들어차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아무리 농을 잘 제거한다고 해도 비강 사혈이
동반되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석션기로 농을 제거하는 것은 부비동 안에 농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시행하고
알게 모르게 점점 더 침 치료의 치료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 듯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분명 석션법에 많은 의존을 하는 부비동 치료법이었는데, 처음보다 석션의 시간이 짧아지게 된 것은 물론, 비강과 부비동 내에 농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도농을 확실히 빼내 주어도 다시 금방 들어찰 것을 알기 때문에 잠깐 시원하게 느낄 정도만 농을 제거하면서 치료가 진행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에서 석션으로 농을 확실히 빼내주지 않았고, 분명 농이 가득 차 있었던 환자였는데, 다음번 치료 시 농이 획기적으로 줄어 있었던 경우를점점 더 많이
경험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창원에서 축농증과 중이염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던 7살 난 남자아이였다. 농이 어찌나 많은지 빼내도 빼내도 끝없이 나오는 농이었다. 
아이가 발버둥을 많이 쳐서 농을 조금은커녕 농을 빼는 시늉만 할 수 있었다. 아이가 몸부림을 쳐서 비강 사혈도 조금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찬바람만 불면 감기에 걸리고 코감기만 오면 중이염으로 고생했던 아이였는데, 불과 10번의 치료를 넘지 않고, 그 많던 농으로 인한
축농증과 중이염이 완치가 되었던 것이다. 지난 번 치료에서 분명히 농이 가득 차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가득 차 있어야 할 농이 아무짓도 하지 않은
몇일 사이에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거의 전광석화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코 치료를 해오던 25년 만에 처음으로, 코의 구조에 대한 감탄과 코의 구조가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코의 구조에 대해 불만스럽게
느꼈던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코 치료에 있어서 석션기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강의 점막을 사혈하게 되면서 점점 진화하여 하비갑개뿐 아니라 중비갑개와 상비갑개의 부기를 빼내주게 되면서 비염과 축농증의 완치율이 높아져 왔고,
석션에 의지해서 축농증을 치료해 왔던 시각에서 굳이 석션을 하지 않아도 비염과 축농증이 완치되는 경험들이 많아지면서 뭐라고 정의 할 수는 없었지만
점점 그렇게 치료가 진행되어 왔었던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굳이 석션법을 의지하지 않아도 ​비강과 부비동의 원래 구조대로 바람 길을 제대로 생기게 되면, 다시 말해서 부비동으로 연결된 관에 베르누이의 효과가 적용되어
연결된 가느다란 관이 빨대 역할을 하게 되기만 하면 부비동안의 농은 저절로 해결되는 완벽한 구조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임상을 하는 매 순간, 비강과 부비동 구조의 신비에 대해 더욱 더 놀라며 감사하고 있다.